오늘은 모세의 탄생일을 기리는 헌정 방송입니다. 『동방의 신성한 책들과 초기 문헌 4권~ 중세 히브리어: 미드라시 탄후마』를 계속 소개하겠습니다. 미드라시는 우리의 행동과 의도가 모두 하나님과의 영적 연결과 공동체에 대한 우리 책임을 형성하는 걸 보여주며, 연민과 신성한 목적에 뿌리내린 삶으로 인도합니다.
미드라시
『의인에게는 죽음이 없나니, 의인은 떠나기 전에 자손들을 축복한다. 다윗은 유다의 후손이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편 133) 「네가 오라비 같았더라면」(아가 8) 형제들이 있다. 카인과 아벨은 형제였지만, 카인은 아벨을 죽였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형제였지만, 그 사이에 사랑이 없었다. 야곱과 에서는 서로 형제애가 없었고, 요셉과 형제들은 서로에게 큰 사랑을 보이지 않았다.
다윗과 솔로몬은 모세와 아론을 전형적인 형제로 생각했다. 모세가 그토록 끈질기게 파라오에게 가는 사자가 되기를 주저했던 이유의 하나는, 나이가 많고 웅변에 능했던 형 아론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론의 역할로 여겨지는 것을 가로채기를 주저했다. 사람의 가장 깊은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은 모세가 사명을 거부한 진짜 이유를 알고 계셨다. 〔…〕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2). 이스라엘의 마지막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것이다. 다윗 왕이 믿음을 중시한 것을 보라(시편 105). 믿음에 관해 다윗은 말한다, 「이것은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 들어가리라」 모세가 손을 들어서 아말렉을 물리친 것도 아니고, 구리 뱀이, 불 뱀이 무는 것을 멈추게 한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향한 곳, 즉 하늘로 향한 그들 기도가 아말렉을 물리치고 불 뱀을 멈추게 했다.
지식을 얻었더라도, 그 지식 때문에 동시에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려고 한다면, 말하려는 것을 두세 번 홀로 암송하라. 아키바 벤 요세프 랍비와 같이 위대한 인물조차 한 번은 회중에서 설교 요청을 받았을 때, 자신이 하려는 말을 두세 번 홀로 연습하지 않으면 설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사람은 대중적 명성과 특별함을 추구해서는 안 되지만, 겸손과 은둔의 오류를 범하여 공동체 문제에 봉사하기를 거부해서도 안 된다. 〔…〕
우상 숭배자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신들을 대하는 습관이 있는데, 어떤 상황을 자신의 신들이 행한 것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상황이 좋으면, 자신의 신에게 공물을 바친다. 선지자는 말합니다. 「그물에 제사하고, 투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되기 때문이라」(하박국 1) 반면에, 역경이 덮치면, 그들은 그들 신들에게 분노를 터뜨린다. 선지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그들은 주릴 때에 자신을 괴롭게 하고 왕과 신을 저주하리라」(이사야 8)』